지자체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 이치수 언론단체총연합 회장
장성일 기자입력 : 2026. 03. 30(월) 09:38

[스쿨iTV] 세계청년리더총연맹(WFPL) 소속 이치수 전국언론단체총연합회(NFPO·이하 언론단체총연합) 회장(현 세계언론협회 회장 겸 대한인터넷신문협회 회장)은 ‘지자체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를 주제로 한 4편의 칼럼 시리즈를 순차적으로 발표한다고 밝혔다.
이번 칼럼은 반복되는 가족 참극과 위기 가정 방치 문제를 계기로, 지자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을 제시하기 위해 기획됐다. 단순한 문제 제기에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실제로 적용 가능한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 회장은 본 칼럼에서 “반복되는 비극은 개인이나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지자체의 행정 편의주의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고 밝혔다.
이어 “위기 신호는 이미 확인됐음에도 필요한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행정이 필요가 아닌 편의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 기준이 유지되는 한 동일한 사건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이 회장은 “지자체는 더 이상 위험을 인지하고도 적절히 대처하지 않는 방관적 행정에 머물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전제로 한 적극 행정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이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어떤 정책도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지자체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반복된 비극을 막기 위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지난 3월 18일, 울산의 한 가정집에서 30대 아버지와 어린 자녀 4명이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사건은 개인의 선택이나 가정 내부의 문제로 설명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선다. 핵심은 결과가 아니라 그 이전 과정에 있다. 이미 여러 차례 위기 신호가 확인됐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사건을 접한 순간, 지금도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20여 년 전의 한 사건이 떠올랐다.
경상도의 한 시골 마을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한 아버지가 있었다. 그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지만, 다섯 살가량의 어린 딸을 두고 있었다. 자신이 떠난 이후 아이가 감당해야 할 삶을 생각하며, 그는 깊은 절망 속에서 오랜 시간 선택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수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우며 끝없는 갈등 속에 머물렀다. 혼자 떠나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아이를 남겨두는 것이 더 큰 고통인지. 그 끝에서 그는 결국 잘못된 선택에 이르고 말았다.
어느 날 그는 동네 가게에서 아이가 평소 먹고 싶어 하던 과자를 한 봉지 사서 돌아왔다. 아이는 그 과자를 받아 들고 기뻐하며 아버지를 껴안았다. 그 평범한 순간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아이는 알지 못했다. 그때는 추석을 열흘 남짓 앞둔 시점이었다. 집집마다 명절을 준비하며 가족을 기다리던 시기였지만, 그 가정에는 아무런 준비도, 기대도 없었다.
그는 아이의 손을 잡고 마을 외곽의 인적이 드문 원두막으로 향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 둔 수면제를 음료에 타 아이에게 건넸다. 아무것도 모른 채 과자를 먹던 아이는 이내 잠에 빠져 들었다. 그는 망설이다 결국 아이의 생을 끊었고, 곧바로 자신도 생을 마감했다.
과자를 받아 들고 기뻐하던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 그리고 그 아이를 바라보며 찢어질 듯한 고통 속에서 얼굴 가득 눈물을 머금은 아버지의 모습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잊은 적이 없다.
이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단순한 충격 때문이 아니다. 이 사건은 개인의 선택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긴 침묵의 세월 동안 내면을 짓눌러 온, 외면할 수 없는 본질적인 질문이 있다.
그 가정은 정말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었던 것인가.
위기 신호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인가.
지자체의 무관심 속에 복지 사각지대로 방치되었던 것인가.
그리고 20여 년이 흐른 지금, 울산의 사건은 그 질문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임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확인된 상황을 보면 울산의 해당 가정 역시 장기간에 걸쳐 아동 결석, 건강보험료 체납, 생계 불안정, 보호자 부재, 과중한 양육 부담 등 복합적인 위험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 중 어느 하나만으로도 공적 대응이 시작됐어야 하는 상황이며, 복합적으로 나타났다면 즉각적인 조치가 이루어졌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적절한 대응이 아니라, 결국 방치로 이어졌다.
이와 같은 사건은 처음이 아니다. 2014년 서울 송파 세 모녀 사건, 2022년 경기 수원 모녀 사건, 그리고 이번 울산 사건 등 전국 각 지역에서 반복된 사례들을 보면, 이 흐름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위기 신호는 반복적으로 확인됐지만, 필요한 대응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더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문제가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전국 많은 지역서 유사한 상황이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있으며, 이는 개별 사례가 아니라 행정 전반의 판단 기준과 대응 방식에 대한 문제로 이어진다.
현재 제도는 신청을 전제로 운영된다. 그러나 위기 상황에 놓인 가정일수록 신청 자체가 어렵고, 결과적으로 가장 도움이 필요한 위기의 가정이 제도 밖에 남는다.
또한 현장에서는 적극적으로 대응할수록 부담이 커지고, 대응하지 않을 경우 책임이 발생하지 않는 환경이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소극적 대응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는 복지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이미 초저출생 상황에 진입했으며, 출생 이후의 삶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부모가 위기에 처했을 때 공공이 실제로 대응할 것이라는 신뢰가 부족한 사회에서 초저출생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 결국 이 문제는 하나로 귀결된다.
위기 상황에 놓인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지자체의 본질적 역할인가라는 근본적 물음이다. 20여 년 전 그 사건 이후 지금까지 이 의문을 내려놓은 적이 없다.
그리고 이제는 그 물음에 대한 답을 모색하는 단계를 넘어, 지자체의 존재 이유에 부합하는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시점이다.
본 칼럼 ‘지자체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는 총 4편으로 구성된다.
칼럼1: 우리 사회에 던진 ‘울산의 비극’
칼럼2: 보여주기 행정은 왜 반복되는가
칼럼3: 지자체는 무엇을 선택하고 있는가
칼럼4: 지자체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이번 칼럼은 반복되는 가족 참극과 위기 가정 방치 문제를 계기로, 지자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을 제시하기 위해 기획됐다. 단순한 문제 제기에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실제로 적용 가능한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 회장은 본 칼럼에서 “반복되는 비극은 개인이나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지자체의 행정 편의주의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고 밝혔다.
이어 “위기 신호는 이미 확인됐음에도 필요한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행정이 필요가 아닌 편의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 기준이 유지되는 한 동일한 사건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이 회장은 “지자체는 더 이상 위험을 인지하고도 적절히 대처하지 않는 방관적 행정에 머물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전제로 한 적극 행정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이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어떤 정책도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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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단체총연합 이치수 회장 |
지자체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반복된 비극을 막기 위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지난 3월 18일, 울산의 한 가정집에서 30대 아버지와 어린 자녀 4명이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사건은 개인의 선택이나 가정 내부의 문제로 설명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선다. 핵심은 결과가 아니라 그 이전 과정에 있다. 이미 여러 차례 위기 신호가 확인됐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사건을 접한 순간, 지금도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20여 년 전의 한 사건이 떠올랐다.
경상도의 한 시골 마을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한 아버지가 있었다. 그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지만, 다섯 살가량의 어린 딸을 두고 있었다. 자신이 떠난 이후 아이가 감당해야 할 삶을 생각하며, 그는 깊은 절망 속에서 오랜 시간 선택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수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우며 끝없는 갈등 속에 머물렀다. 혼자 떠나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아이를 남겨두는 것이 더 큰 고통인지. 그 끝에서 그는 결국 잘못된 선택에 이르고 말았다.
어느 날 그는 동네 가게에서 아이가 평소 먹고 싶어 하던 과자를 한 봉지 사서 돌아왔다. 아이는 그 과자를 받아 들고 기뻐하며 아버지를 껴안았다. 그 평범한 순간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아이는 알지 못했다. 그때는 추석을 열흘 남짓 앞둔 시점이었다. 집집마다 명절을 준비하며 가족을 기다리던 시기였지만, 그 가정에는 아무런 준비도, 기대도 없었다.
그는 아이의 손을 잡고 마을 외곽의 인적이 드문 원두막으로 향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 둔 수면제를 음료에 타 아이에게 건넸다. 아무것도 모른 채 과자를 먹던 아이는 이내 잠에 빠져 들었다. 그는 망설이다 결국 아이의 생을 끊었고, 곧바로 자신도 생을 마감했다.
과자를 받아 들고 기뻐하던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 그리고 그 아이를 바라보며 찢어질 듯한 고통 속에서 얼굴 가득 눈물을 머금은 아버지의 모습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잊은 적이 없다.
이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단순한 충격 때문이 아니다. 이 사건은 개인의 선택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긴 침묵의 세월 동안 내면을 짓눌러 온, 외면할 수 없는 본질적인 질문이 있다.
그 가정은 정말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었던 것인가.
위기 신호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인가.
지자체의 무관심 속에 복지 사각지대로 방치되었던 것인가.
그리고 20여 년이 흐른 지금, 울산의 사건은 그 질문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임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확인된 상황을 보면 울산의 해당 가정 역시 장기간에 걸쳐 아동 결석, 건강보험료 체납, 생계 불안정, 보호자 부재, 과중한 양육 부담 등 복합적인 위험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 중 어느 하나만으로도 공적 대응이 시작됐어야 하는 상황이며, 복합적으로 나타났다면 즉각적인 조치가 이루어졌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적절한 대응이 아니라, 결국 방치로 이어졌다.
이와 같은 사건은 처음이 아니다. 2014년 서울 송파 세 모녀 사건, 2022년 경기 수원 모녀 사건, 그리고 이번 울산 사건 등 전국 각 지역에서 반복된 사례들을 보면, 이 흐름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위기 신호는 반복적으로 확인됐지만, 필요한 대응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더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문제가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전국 많은 지역서 유사한 상황이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있으며, 이는 개별 사례가 아니라 행정 전반의 판단 기준과 대응 방식에 대한 문제로 이어진다.
현재 제도는 신청을 전제로 운영된다. 그러나 위기 상황에 놓인 가정일수록 신청 자체가 어렵고, 결과적으로 가장 도움이 필요한 위기의 가정이 제도 밖에 남는다.
또한 현장에서는 적극적으로 대응할수록 부담이 커지고, 대응하지 않을 경우 책임이 발생하지 않는 환경이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소극적 대응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는 복지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이미 초저출생 상황에 진입했으며, 출생 이후의 삶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부모가 위기에 처했을 때 공공이 실제로 대응할 것이라는 신뢰가 부족한 사회에서 초저출생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 결국 이 문제는 하나로 귀결된다.
위기 상황에 놓인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지자체의 본질적 역할인가라는 근본적 물음이다. 20여 년 전 그 사건 이후 지금까지 이 의문을 내려놓은 적이 없다.
그리고 이제는 그 물음에 대한 답을 모색하는 단계를 넘어, 지자체의 존재 이유에 부합하는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시점이다.
본 칼럼 ‘지자체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는 총 4편으로 구성된다.
칼럼1: 우리 사회에 던진 ‘울산의 비극’
칼럼2: 보여주기 행정은 왜 반복되는가
칼럼3: 지자체는 무엇을 선택하고 있는가
칼럼4: 지자체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